
Murris, K. (2022). Karen Barad as Educator: Agential Realism and Education. Singapore: Springer.
우리는 흔히 교육을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로 생각합니다.
교사가 가르치고, 학생이 배우며, 책과 교구, 교실 환경은 단지 그 과정을 돕는 배경처럼 여겨지죠.
그런데 만약 교실 안의 모든 것이 — 사람, 의자, 빛, 소리, 기술, 공기 — 서로 얽혀서 함께 배움을 만들어 간다면 어떨까요?
남아프리카의 교육학자 카린 뮤리스(Karin Murris) 는 이 놀라운 질문을 통해, 물리학자이자 철학자인 캐런 바라드(Karen Barad) 의 사상을 교육 현장 속으로 불러옵니다.
『Karen Barad as Educator: Agential Realism and Education』은 우리가 ‘배움’과 ‘교육’을 바라보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줍니다.
지식이 단방향으로 전달되는 과정이 아니라, 사람과 사물, 공간과 시간, 감정과 관계가 얽혀 함께 만들어지는 살아있는 과정으로 교육을 재해석하게 합니다.
세상이 함께 배우는 이유
저자가 빌려온 이론은 물리학자이자 철학자인 캐런 바라드(Karen Barad) 의
“에이전셜 리얼리즘(agential realism), 행위적 실재론 이에요.
이 말은 조금 어렵지만, 핵심은
"세상의 모든 것은 서로 얽혀서 함께 존재하고 변화한다" 입니다.
즉, 세상은 독립된 조각들의 모임이 아니라
끊임없이 얽히고 반응하며 만들어지는 관계의 그물이라는 뜻입니다.
‘상호작용’이 아닌 ‘내부 작용’
우리는 보통 “상호작용(interaction)”이라고 하면,
“A가 B에게 영향을 준다”는 식으로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교사가 질문을 던지고 → 학생이 대답한다.
그런데 바라드의 개념은 다릅니다.
그녀는 intra-action(내부 작용) 이라고 말해요.
“A와 B는 처음부터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서로 관계를 맺는 과정 속에서 함께 만들어진다.”
즉, 교사와 학생은 ‘이미 정해진 역할’이 아니라,
수업 속에서 매 순간 새롭게 함께 ‘되어가는(becoming)’ 존재들이에요.
예를 들어 —
- 같은 질문이라도 교실의 분위기, 아이의 표정, 주변의 소리, 조명 등이 다르면
전혀 다른 대화가 만들어집니다. - 이때 교사, 학생, 공간, 소리, 물건이 모두 함께 배움에 참여하고 있는 거예요.
‘물질’도 교사다
뮤리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식은 머리에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몸과 사물, 공간이 함께 만든다.”
아이들이 그림을 그릴 때를 생각해 봅시다.
붓의 질감, 종이의 두께, 빛의 방향, 손의 힘, 옆 친구의 감탄까지 —
이 모든 것이 그림의 결과에 영향을 미칩니다.
즉, “학습은 뇌의 일이 아니라, 온몸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사는 단순히 ‘지식을 전하는 사람’이 아니라,
교실 전체의 물질적·감각적 흐름을 함께 느끼는 존재입니다.
‘책임’이 아닌 ‘응답할 수 있음’
이 책에서 중요한 또 하나의 단어는 response-ability(응답가능성) 입니다.
보통 “responsibility(책임)”이라고 하면
‘누가 잘못했는가’, ‘누가 해야 하는가’를 떠올리지만,
뮤리스가 말하는 응답가능성은 다릅니다.
“모든 존재는 서로에게 응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 교사가 아이의 질문에 귀 기울이는 것,
- 아이가 친구의 말에 반응하는 것,
- 교구가 예상치 못한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 —
이 모두가 응답가능성의 표현이에요.
교육은 ‘통제하는 일’이 아니라,
이런 응답의 관계망을 살아내는 일입니다.
‘반사(reflection)’가 아닌 ‘회절(diffraction)’
많은 교육이 ‘반성(reflection)’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뮤리스는 ‘회절(diffraction)’이라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합니다.
‘회절’은 물리학에서 파동이 부딪히며
서로 간섭하고 새로운 무늬를 만들어내는 현상입니다.
즉, 배우는 과정에서도 —
다른 생각들이 부딪히며 생기는 차이의 무늬 속에서
새로운 통찰이 탄생한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의 그림책을 읽더라도
아이들마다 다르게 해석하고, 그 차이가 서로 부딪히며
더 풍성한 의미가 만들어질 수 있죠.
이것이 바로 ‘회절적 배움’입니다.
뮤리스는 이 과정을 “아동적인 방법론(childlike methodology)”이라고 부릅니다 —
정답보다 호기심과 놀라움을 더 소중히 여기는 태도입니다.
교육은 ‘매듭 짓기’다
뮤리스는 “교육은 매듭 짓기(knot-making)”라고 말합니다.
교실을 한 번 떠올려 보세요.
아이들이 이야기하고, 색연필이 굴러가고, 햇빛이 바닥을 비추고,
선생님이 질문을 던지는 순간 —
그 안에서는 정말 많은 일들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아이의 생각, 친구의 웃음, 교사의 말투, 교구의 질감, 공기의 온도,
그리고 그 속에서 생겨나는 감정들까지…
이 모든 것이 얽혀 하나의 ‘매듭’을 만듭니다.
뮤리스가 말하는 ‘매듭 짓기(knot-making)’란 바로 이런 배움의 얽힘을 뜻합니다.
배움은 단순히 “가르치고 이해하는” 일이 아니라,
사람, 생각, 사물, 감정이 함께 뒤섞여 만들어지는 살아있는 관계의 무늬인 것이죠.
매듭은 고정된 게 아니라,
조였다가, 풀렸다가, 다시 묶이는 살아있는 형태예요.
배움도 그렇습니다.
- 이해가 될 때는 매듭이 단단히 조여지고,
- 헷갈릴 때는 느슨해지고,
-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면 또 다른 매듭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뮤리스는 말합니다.
“교육은 모든 것을 깔끔하게 정리하거나 풀어내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 얽힘 속에서 함께 머무는 일이다.”
교사는 어떤 존재일까?
교사는 ‘매듭을 풀어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매듭을 함께 바라보고, 그 안의 긴장과 아름다움을 느끼는 사람이에요.
교사는 말하죠.
“이 매듭 안에 뭐가 있을까?
이 얽힘 속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건 뭘까?”
즉, 교사는 완벽한 답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학생과 함께 매듭을 살펴보고 그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가는 동반자입니다.
교사는 이 매듭을 ‘풀려고 애쓰기’보다,
그 안에서 생겨나는 긴장과 아름다움을 함께 느끼는 사람입니다.
교실은 세상의 축소판이다
이 책은 어려운 철학 용어로 시작하지만,
결국은 매우 따뜻한 이야기로 끝납니다.
교육은 지식을 주고받는 일이 아니라,
세상과 함께 살아가는 연습이다.
교실은 단지 공부하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과 사물, 감정과 생각이 얽혀
세상을 함께 배워가는 작은 우주입니다.
그래서 뮤리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는 사람도,
세상 속에서 서로에게 배우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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