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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Parenting

이론과 실천의 경계를 넘어 — 교사는 ‘앎을 살아내는 존재’

by 해피어스 2025.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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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nz Taguchi, H. (2010). Going Beyond the Theory/Practice Divide in Early Childhood Education: Introducing an Intra-Active Pedagogy. Routledge.

 

 

유아교육 현장에서 흔히 듣는 말이 있습니다.


“이론은 이론일 뿐, 현장은 달라요.”


많은 교사들이 교육 이론을 ‘머리로만 아는 것’이라 느끼고, 실제 수업에서는 ‘감각과 경험’으로 대응합니다.

 

그러나 이런 사고방식은 ‘이론’과 ‘실천’을 서로 떨어진 것으로 보게 만들고, 그 사이에 깊은 간극을 만듭니다.

 

스웨덴의 교육철학자 힐레비 렌츠 타구치(Hillevi Lenz Taguchi) 는 이러한 분리된 사고를 뛰어넘기 위해, 『Going Beyond the Theory/Practice Divide in Early Childhood Education』에서  내부작용 페다고지(Intra-Active Pedagogy)” 을 제안합니다.


그녀는 “이론은 머리로 배우고, 실천은 몸으로 한다”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이론과 실천이 동시에 얽혀 작동하는 살아 있는 과정으로 교육을 바라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교육은 관계의 ‘얽힘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

 

 ‘내부작용(Intra-active)’이라는 새로운 관점

 

Taguchi가 사용하는 “intra-action(내부작용)” 이란 말은 철학자 카렌 바래드(Karen Barad) 의 개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interaction(상호작용)’은 이미 존재하는 두 존재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intra-action’은 그 이전의 상태를 가리킵니다.


즉, 교사, 아이, 공간, 물질(교구), 감정 등이 미리 정해진 존재로서 ‘서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만남 속에서 새롭게 생겨나고 변화하는 과정을 뜻합니다.

 

Taguchi는 “아이와 교사, 사물, 빛, 소리, 감정까지도 모두 교육의 행위자”라고 말합니다.


교사는 단지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 물질, 공간, 감정, 시간의 흐름과 함께 새로운 학습 사건을 만들어 가는 존재입니다.


문서화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관계의 장치’

Taguchi는 이탈리아의 레지오 에밀리아 교육에서 영감을 받아, ‘교육적 기록작업(pedagogical documentation)’ 을 매우 중요하게 다룹니다.


하지만 그녀에게 문서화는 단순히 ‘아이들의 활동을 기록하고 정리하는 도구’가 아닙니다.


그것은 아이와 교사, 부모가 함께 자신들의 학습을 다시 바라보고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사유의 장치” 입니다.

 

예를 들어, 교사가 아이가 만든 그림이나 놀이를 사진으로 찍고, 아이와 함께 그것을 다시 보며 대화할 때,
그 순간 ‘학습’이 다시 태어납니다.


기록은 과거를 단순히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다시 열어 새로운 미래를 가능하게 하는 ‘행위자(agent)’가 됩니다.


교육은 ‘윤리적 사건’이다

Taguchi는 교육을 단순히 ‘기술적인 실행’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녀에게 교육은 “우리가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를 끊임없이 묻는 윤리적 행위입니다.

 

그녀는 들뢰즈(Deleuze)와 과타리(Guattari)의 사상을 빌려 “교육은 늘 ‘becoming(되어감)’의 과정”이라고 말합니다.


아이도, 교사도, 교구도, 공간도 끊임없이 변화하며 서로를 만들어 갑니다.


따라서 교육의 핵심은 “정답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두고, 관계 안에서 함께 변화하는 힘을 기르는 것입니다.


교사 교육의 새로운 방향

이 책은 특히 예비교사 교육(teacher education) 에서 이론과 실천의 연결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탐구합니다.

 

Taguchi는 교사교육의 핵심 문제를 이렇게 짚습니다.

“왜 우리는 교사를 ‘이론을 적용하는 사람’으로만 가르치는가?”

 

전통적인 교사교육은 보통 이렇게 구성됩니다.

  1. 대학이나 연수 과정에서 ‘교육이론’을 배우고,
  2. 이후 ‘현장실습’에서 그 이론을 적용해 본다.

즉, 이론은 머리에서 배우고, 실천은 몸으로 해보는 것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Taguchi는 이 구조가 교사를 ‘지식을 전달하는 주체’와 ‘실천의 도구’로 분리시키는 잘못된 전제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합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론과 실천은 나뉘어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교육의 순간마다 서로를 만들어내며 얽혀 있다.”

 

교사는 ‘내부작용 학습자(Intra-active Learner)’

Taguchi는 교사를 단순한 “이론 적용자”가 아닌, ‘내부작용 학습자(Intra-active learner)’로 정의합니다.
여기서 ‘내부작용(Intra-active)’이란, 교사 자신이
아이, 교구, 환경, 감정, 시간과 끊임없이 얽혀 변화하며 배워가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즉, 교사는 자기 안에서 배움이 일어나는 ‘살아 있는 장’이 되어야 합니다.

 

이때 ‘배움’은 단순히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몸과 감각, 감정, 환경의 상호작용 속에서 살아 있는 앎(embodied knowing)으로 형성됩니다.

 

예를 들어, 교사가 현장에서 아이와 그림책을 읽는 장면을 생각해 봅시다.

  • 책의 내용(이론적 지식),
  • 아이의 반응(감정적 표현),
  • 교사의 목소리,
  • 교실의 조명과 분위기,
  • 그림책의 색감과 촉감까지—
    이 모든 요소가 내동적으로 얽히며 ‘배움의 순간’을 만들어냅니다.

Taguchi는 바로 이 ‘살아 있는 얽힘’을 통해 이론이 실천 속에서 재탄생한다고 봅니다.
이론은 교실 밖에서 배우는 개념이 아니라,

 

교실 안에서 몸과 관계를 통해 새롭게 만들어지는 과정적 존재입니다.


실습(Practicum)은 ‘적용’이 아니라 ‘공-생산(Co-Production)’의 장

Taguchi는 교사 실습(practicum)도 전통적인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많은 교육기관에서 실습은 여전히 “이론을 시험하는 단계”로 간주됩니다.

 

그러나 그녀는 실습을 이론이 ‘적용’되는 곳이 아니라,
이론이 ‘생산’되고 ‘재구성’되는 장소
로 봅니다.

 

즉, 교사는 실습 현장에서 ‘정답을 증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 동료 교사, 공간, 물질, 시간과 함께 새로운 배움을 공-생산(co-produce) 하는 존재입니다.

 

Taguchi는 이것을 “Pedagogy as research” —
즉, “교육 자체가 하나의 탐구행위”로 이해합니다.

 

교사는 현장에서 단순히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 감정, 환경과 함께 배우는 연구자(researcher)로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론은 몸과 관계 속에서 ‘살아 있는 지식’이 된다

이 책의 가장 아름다운 통찰은 바로 이것입니다.

“이론은 교실 밖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교실 안에서 ‘몸과 관계’를 통해 살아난다.”

 

Taguchi는 이를 ‘embodied theorizing’(체화된 사유) 라고 표현합니다.


이론은 교사의 손짓, 목소리, 시선, 감정 반응 속에서 숨쉬며 살아 있는 존재가 됩니다.

 

예를 들어, 교사가 아이의 놀이에 개입하지 않고 잠시 지켜보는 ‘멈춤의 행위’조차도,
그 안에는 배움에 대한 윤리, 관계에 대한 존중, 존재론적 사유가 모두 녹아 있습니다.
그 순간, 교사는 이미 “이론을 실천하는 몸”이 됩니다.


새로운 교사교육을 향해 — ‘사유하는 몸’, ‘관계하는 존재’

Taguchi의 관점은 교사교육 프로그램에 다음과 같은 전환을 제안합니다.


 

기존 교사교육 새로운 방향 (Taguchi의 관점)
이론 → 실천 (순차적 단계) 이론과 실천이 얽혀 생성되는 순환적 과정
교사 = 이론을 적용하는 사람 교사 = 내동적 학습자이자 공동연구자
실습 = 이론의 시험대 실습 = 새로운 의미를 함께 만드는 장
지식 = 머리로 배우는 것 지식 = 몸과 관계 속에서 살아나는 것

이런 전환은 교사교육이 단순한 ‘기술 훈련’이 아니라,
존재의 변화를 동반한 배움(learning as becoming)이 되어야 함을 시사합니다.


즉, 교사교육은 “무엇을 할 수 있느냐”보다 “어떤 존재가 되어 가고 있느냐”를 묻는 여정입니다.

 


교육은 ‘함께 얽히며 살아가는 일’

『Going Beyond the Theory/Practice Divide in Early Childhood Education』은 다소 철학적이지만, 우리에게 아주 실질적인 메시지를 줍니다.

“교육은 ‘정답’을 찾는 일이 아니라,
함께 얽히며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 가는 일이다.”

 

교실 속에서 아이와 교사, 교구, 공간이 서로 얽혀 만드는 그 복잡하고 아름다운 순간들 속에,
우리는 ‘배움’의 진짜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유아교육뿐 아니라, 모든 교육이 관계적이며 살아 있는 실천임을 상기시켜 줍니다.


교사는 “이론을 적용하는 사람”이 아니라,
삶 속에서 배우고, 관계 속에서 사유하는 존재라는 점을 잊지 말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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