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andenbroeck, M., De Vos, J., Fias, W., Olsson, L. M., Penn, H., Wastell, D., & White, S. (2017). Constructions of Neuroscience in Early Childhood Education. Routledge.
뇌과학은 정말 아이의 모든 것을 설명할까?
요즘 부모 교육이나 유아교육 뉴스에서 이런 말을 자주 듣습니다.
“아이의 두뇌는 생후 3년 동안 80%가 완성됩니다.”
“스트레스는 아이의 뇌를 망가뜨립니다.”
“부모의 사랑이 시냅스를 만든다.”
이런 문장은 과학처럼 들리지만, 그 안에는 ‘불안과 압박’이 숨어 있습니다.
부모는 ‘혹시 내가 아이의 뇌 발달을 망치는 건 아닐까’ 걱정하고,
교사는 ‘수업이 아이의 두뇌 자극에 충분할까’ 불안해합니다.
바로 이런 시대적 분위기를 깊이 있게 다룬 책이
Michel Vandenbroeck와 여러 연구자가 함께 쓴
『Constructions of Neuroscience in Early Childhood Education』입니다.
이 책은 말합니다.
“뇌과학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교육의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뇌 중심 사고’가 만든 새로운 신화
이 책은 오늘날의 교육을 “신경 전환(Neuroturn)”의 시대라고 부릅니다.
모든 교육 문제를 ‘뇌’로 설명하려는 흐름이 강해졌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학습 부진은 뇌의 연결이 약해서’,
‘빈곤층 아이는 뇌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부모의 스트레스가 아이의 신경망을 해친다’는 식의 말이 쉽게 퍼집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 중 상당수는 뇌과학의 복잡한 내용을 단순화한 오해입니다.
책은 이렇게 지적합니다.
“아이의 발달을 뇌 속의 전기 신호로만 설명하는 순간,
우리는 아이를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니라 ‘프로젝트’로 바꾸어 버린다.”
아이의 배움은 두뇌 속에서만 일어나지 않습니다.
몸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관계 맺으며, 세상을 탐험하는 과정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증거가 있다”는 말이 언제나 옳은 건 아니다
이 책의 또 다른 핵심은 “증거의 정치학(politics of evidence)”입니다.
요즘 교육과 복지 정책은 ‘과학적 근거(evidence-based)’를 내세웁니다.
겉보기에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보이죠.
하지만 저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증거는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어떤 증거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누가 책임을 지고, 누가 탓을 받는지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어떤 연구가
“부모의 양육 스트레스가 아이의 뇌 발달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고 발표되면,
정부는 ‘부모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부모가 더 노력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책은 묻습니다.
“그 부모는 왜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을까?
그 사회는 부모를 얼마나 도와주고 있는가?”
이처럼 과학은 진실을 보여주는 동시에, 책임의 방향을 바꾸는 힘을 가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과학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그 이면의 사회적 맥락까지 함께 봐야 합니다.
뇌과학이 ‘빈곤’을 설명할 수 있을까?
영국의 학자 헬렌 펜(Helen Penn)은
“빈곤의 신경화(neurologization of poverty)”를 강하게 비판합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요즘 정책은 빈곤을 ‘뇌의 결함’으로 바꿔버린다.”
예를 들어,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은 언어 자극이 부족해 뇌가 덜 발달한다”는 연구가 나오면,
그 사회는 가난의 문제를 ‘가정 내부의 문제’로 돌립니다.
하지만 진짜 원인은 불안정한 일자리, 주거, 돌봄 시스템 부족 같은 구조적 문제죠.
결국, 문제는 뇌가 아니라 사회에 있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아이의 뇌를 바꾸기 전에,
그 아이가 살아가는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학이 교육으로 ‘번역’될 때 생기는 오해
뇌과학 연구를 교육에 적용하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책에서는 수 개념(number processing) 연구를 예로 듭니다.
실험실에서는 아이가 숫자를 볼 때 특정 뇌 부위가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곧 “수학을 이렇게 가르쳐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교실은 실험실이 아니기 때문이죠.
아이의 학습에는 감정, 관계, 놀이, 언어, 문화가 함께 작용합니다.
그래서 저자 윔 피아스(Wim Fias)는 이렇게 말합니다.
“신경과학을 교육의 언어로 번역하는 순간, 수많은 맥락이 사라진다.”
교육은 과학보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 더 가깝습니다.
즉, 교육의 본질은 “뉴런이 아니라 마음의 연결”입니다.
‘아이의 뇌에 투자하라’는 말의 함정
책은 또 하나의 흥미로운 흐름을 지적합니다.
바로 “사회투자(social investment)” 담론과 신경과학의 결합입니다.
OECD나 유니세프 보고서에는 이런 문구가 자주 등장합니다.
“유아기에 1달러를 투자하면,
성인이 되었을 때 7달러의 사회적 수익이 돌아온다.”
이런 주장은 교육의 경제적 가치를 강조하지만,
결국 아이를 투자 대상, 뇌를 자본으로 만드는 시선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책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의 뇌는 국가 경쟁력의 수단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이해되어야 한다.”
다시, ‘인간적인 교육’으로 돌아가자
이 책은 단순히 “뇌과학은 틀렸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제안합니다.
“뇌과학과 교육이 서로의 언어를 존중하며 대화할 수 있다면,
우리는 아이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스웨덴의 연구자 리셀롯 올손(Liselott Olsson)은
아이를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생성되는 존재”로 설명합니다.
아이의 뇌는 그 관계의 한 부분일 뿐,
아이의 전부를 설명하지는 못합니다.
결국 진짜 교육은
두뇌를 훈련시키는 것이 아니라,
함께 배우고, 느끼고, 성장하는 삶의 과정입니다.
아이는 뇌가 아니라, 하나의 우주다
Constructions of Neuroscience in Early Childhood Education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는 최적화되어야 할 뇌가 아니라,
사랑과 관계로 엮인 하나의 세계다.”
우리가 과학의 언어만 믿을 때,
아이의 웃음, 상상, 놀이 같은 삶의 본질적 순간들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육은 결국 인간과 인간이 만나는 이야기입니다.
아이를 바꾸는 가장 강력한 힘은
‘뇌 자극’이 아니라 존중, 대화, 그리고 따뜻한 관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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