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ellers, M. (2013). Young Children Becoming Curriculum: Deleuze, Te Whāriki and Curricular Understandings. Routledge.
커리큘럼은 문서가 아니라 ‘살아 있는 흐름’
우리는 종종 커리큘럼을 ‘가르칠 내용이 정리된 문서’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Marg Sellers는 이렇게 묻습니다.
“정말 커리큘럼은 교사들이 설계한 문서 안에만 존재할까?
혹은, 아이들이 놀이하고 관계 맺는 바로 그 순간에도 커리큘럼은 생성되고 있을까?”
그녀의 대답은 명확합니다.
커리큘럼은 고정된 설계도가 아니라, 아이들이 세상과 관계 맺으며 ‘되어가는(becoming)’ 살아 있는 흐름이라는 것입니다.
철학적 뿌리: 들뢰즈와 과타리의 ‘흐름의 철학’
Sellers는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Deleuze)와 펠릭스 과타리(Guattari)의 개념들을 유아교육에 가져옵니다.
그들이 말하는 ‘되기(becoming)’와 ‘리좀(rhizome, 뿌리줄기)’는
중심이 없고, 끝없이 연결되는 비선형적 관계의 세계를 상징합니다.
즉, 교사–아이–공간–놀이–사물은 각각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얽히며 서로를 변화시키는 관계망(assemblage) 안에서 존재합니다.
“교육은 중심이 아니라 연결이다.
아이와 교사, 놀이와 물질이 만나며 커리큘럼이 만들어진다.”
뉴질랜드의 테 파리키 Te Whāriki: ‘직조된 매트’로서의 커리큘럼
이 책의 핵심 사례는 뉴질랜드 유아교육 국가 커리큘럼 ‘테 파리키 Te Whāriki’입니다.
‘Whāriki’는 마오리어로 ‘직조된 매트(woven mat)’**를 뜻합니다.
이는 곧 교육이란 하나의 실이 아니라, 다양한 실들이 얽히며 짜여지는 과정임을 상징합니다.
Sellers는 이 테 파리키의 철학을 들뢰즈의 관점과 결합시켜,
‘아이들이 교사의 가르침을 따라가는 존재’가 아니라,
‘놀이와 관계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짜 넣는 공동 창조자’로 바라봅니다.
아이들이 커리큘럼이 된다: Becoming Curriculum
Sellers는 “아이들이 커리큘럼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곧 커리큘럼이 되어간다(Young Children Becoming Curriculum)”고 말합니다.
그녀가 관찰한 실제 장면 속에서,
아이들은 놀잇감을 단순히 사용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 사물과 함께 새로운 놀이의 규칙, 공간의 의미, 관계의 질서를 만들어냅니다.
예를 들어, 한 아이가 나뭇잎을 접시로 사용하기 시작하면
다른 아이들이 그 규칙을 받아들이며, 순간적으로 ‘나뭇잎 식당’이 탄생합니다.
이것이 바로 아이들이 스스로 커리큘럼을 ‘되어가는’ 순간입니다.
교사는 설계자가 아닌 ‘공동 탐험자’
이런 시각 속에서 교사의 역할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교사는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관계의 흐름을 읽고 응답하는 존재, 즉 공동 탐험자(co-explorer)가 됩니다.
“교사는 지식을 주입하는 사람이 아니라,
흐름 속에서 감응하고, 멈추고, 함께 사유하는 사람이다.”
이는 교사교육에서도 중요한 함의를 가집니다.
‘이론 → 실습’으로 나뉜 이분법을 넘어,
이론이 교실 안에서 몸과 관계를 통해 살아 움직이는 과정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리좀, 플래토, 탈영토화 — 복잡하지만 아름다운 관계의 지도
Sellers는 복잡한 철학 개념들을 유아교육 속 구체적 장면으로 풀어냅니다.
| 개념 | 의미 | 교육적 적용 |
| 리좀(rhizome) | 나무처럼 위계적이지 않은, 여러 방향으로 뻗는 뿌리줄기 | 아이, 교사, 환경의 관계는 하나의 중심이 아니라 다중 연결망이다. |
| 고원(plateau) | 지속적인 강도의 흐름, 변화의 중간상태 | 학습은 완결이 아닌 계속되는 ‘과정’이다. |
| 탈영토화(lines of flight) |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는 움직임 | 교사나 제도의 틀을 넘어, 아이의 예측 불가능한 창조적 흐름을 존중하자. |
이 개념들은 교육을 ‘결과’가 아닌 ‘관계적 생성 과정’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커리큘럼의 재개념화: 문서에서 몸으로, 계획에서 관계로
Marg Sellers는 커리큘럼을 이렇게 다시 정의합니다.
“커리큘럼은 문서가 아니라, 관계의 순간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
즉, 커리큘럼은 교실 안의 순간들 —
아이의 호기심, 물질의 반응, 교사의 감응, 시간의 흐름 — 속에서 매 순간 새롭게 짜여집니다.
이런 맥락에서 ‘커리큘럼을 실행한다’는 것은 곧 ‘관계를 살아낸다’는 것입니다.
물질과 공간도 교육의 주체다
Sellers는 특히 물질(materiality)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책상, 블록, 모래, 바람, 소리…
이 모든 것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아이들의 놀이와 학습을 함께 구성하는 공동 주체(co-actor)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은 포스트휴먼(post-human) 사유와 연결됩니다.
인간만이 아니라, 비인간적 존재들도 교육의 구성요소로 인정하는 새로운 윤리입니다.
유아교육의 미래, ‘함께 되어가는 세계’
『Young Children Becoming Curriculum』은 단순히 커리큘럼 논문이 아니라,
교육철학과 삶의 태도에 대한 전환을 제안하는 책입니다.
이 책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들은 커리큘럼의 대상이 아니라,
커리큘럼의 공동 저자이며, 세계의 공동 창조자이다.”
이러한 관점으로 교실을 다시 보면,
놀이 시간은 단순한 ‘활동’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가 태어나는 생성의 장(場)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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